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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지식채널 (E)3 #12 "멕시코 태생의 화가 프리다 칼로"

losoco 2017. 12. 13.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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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지식채널 (E)3 #12 "멕시코 태생의 화가 프리다 칼로"


"내 평생 겪은 두 차례의 대형사고는 전차가 나를 들이받은 것과 디에고를 만난 것이다."

 

프리다

6살에 소아마비를 앓고 18살에 전차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차디찬 쇠창살이 온몸을 관통했으며 다리뼈는 11개로 조각났고

어깨와 발은 으깨어졌다. 부러진 쇄골과 갈비뼈 골반, 척추.......

마치 퍼즐을 마추듯 그녀의 몸을 치료한 의사들은 이소녀가 걷기는커녕

생명조차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1954년 47살의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평생에 걸친 32번의 대수술....

몸을 지탱해주는 보장구와 매일매일 쌓여가는 진통제 없이는 잠깐동안도 서있기 힘들었던 상상조차 되지않는 고통의 시간들

그시간들 속에서 그는 사랑은 아예 불가능 하다 낙담했었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살고 싶었고

깁스를 하고 누워있는 시간들이 너무나도 끔찍히 지루해서

나는 당장 무었이든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그림은 그렇게 시작 되었다."

 

프리다가 모든걸 바쳐 사랑한 이세상에서 유일한 한 사람

"우리집에 와서 내 그림을 평가해 주세요."

그녀의 솔직하고 당돌한 젊음에 반한 멕시코의 중년화가 '디에고 리베라'는

21살 연하였던 프리다와 결혼한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디에고의 외도

급기야 그는 프리다의 여동생과 딴살림을 차린다.

 

너무나 사랑했지만 결혼생활에 지친 프리다는 이혼을 결심하게 된다.

남편이 그토록 좋아하던 긴 머리카락과 전통 토속 의상을 벗어던지고

유명인의 아내가 아닌 자신만의 색을 지닌 화가로 다시태어난다.

 

1939년 "루브르에 초청된 맥시코 최초의 화가"

그곳에 전시된 대부분의 그림은 그녀 자신의 자화상 이었다.

"나는 혼자인 시간이 대부분 이었고 내가 가장 잘알고 잘표현할 수 있었던게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평생을 함께한 육체적 고통과 외로음, 고독....

세번의 임신과 세 번의 유산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이어지지못한

상처입은 사랑과 그녀의 영혼 하지만 그녀는 이모든것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라보며 치열하게 자기자신을 응시했다.

 

"울고 싶을 때면 눈물을 흘리는 대신 차라리 울고 있는 내 모습을 그렸다."

 

평범한 모든 사람들에게 허락되는 건강한 몸과 마음도 예쁜 아이도 따뜻한 사랑도 

그무엇 하나도 얻지 못한 '프리다 칼로'

그녀가 죽기전 마지막으로 남긴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이외출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1984년 맥시코 정부는 150여점에 이르는 프리다 칼로의 유작들을 국보로 지정했다.

칸디스키와 피카소 등과 함께 교류했으며 남미화가 최초로 루브르박물관에 그림이 소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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