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지식채널 (E)4 #10 "물이 되는 꿈 제주해녀"
EBS지식채널 (E)4 #10 "물이 되는 꿈 제주해녀"
"이 고생만은 대물림하지 않으려 했다.."
바다 저깊은곳 그속에서 조용히 숨어있는 전복
귀하디 귀한전복 자식새끼 키워내는 전복
집 방안에 가만히 누워 있어도 깊은 바다 어딘가에서
전복이 꾸물거리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옷도 입지않고 일하는 여자들!"
"수리심도 모르는 상것들!"
주변에서 아무리 수근대고 손가락질해도 그녀들은 꿈꾸었다.
맨발 맨손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바다 그바다속은 그녀들만이 꿈꿀 수 있는
특별한 여행이기에 그바다속에서 그녀들은 꿈을 일구어 냈다.
제주시 북제주군에는 제주해녀박물관과 제주해녀 항일운동 기념공원이 있다.
1932년 약 3개월의 시간동안 17,000여 명이 참여한 제주잠녀전쟁이라 불리우는 운동은 일제강점기시절 일본인들에게 수탈에맞서
제주해녀 수천명이 빗창(쇠갈고리)을 들고 싸운 사건이다.
"왜놈들한테 잡혀서 고문당할때 천번 만번 생각했지
전복캘때 숨참는거 그거생각하면서 견디자 견뎌내자...."
일본인 무역상과 해조회사등이 해녀의 이익을 대부분 갈취했으며 공판부정과 자금횡령이 그 불씨가 되어
부춘화(25세), 감옥련(23세), 부덕량(22세)을 대표로하여 민혁동맹 소속 12명의 지원으로 준비되었다.
(오문규, 김순종, 김시곤, 문도배, 김성오, 강관순, 신재홍, 한영택, 한원택, 한향택, 고사만, 채재오등..)
1932년 1월 7일 세화장날에 제주해녀들은 일제히 손에 빗장을 들고 머리엔 수경을 쓰고 제주읍으로 향한다.
해녀 대표들을 선두로 300여명의 해녀와 장터에 모인 도민들이 합세해 그 수효는 수천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15년동안 안가본곳이 없어 일본쓰시마부터 중국 칭다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까지...
젊은날을 전부 이국바다에서 보냈지... 그렇게 수도없이 괭이질해서 소라, 전복을 캤는데
결국엔 그게다 일본놈들 배만 부르게했지 뭐야..."
잠녀항쟁이라불리우는 이운동의 결과는 미미했지만 제주잠녀항쟁은 기층단위의 반일,반제의 항일운동으로서 역사적 의의가깊다.
국가보훈처는 2005년 잠녀항쟁 유공자 11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하였다.
"물질로 돈모아 고향땅에 밭을좀샀어
그중 얼마는 제주4.3때 큰아들놈 빼내느라 팔아쓰고
또 6.25때는 작은아들 징집빼달라고 팔아버리고
마지막에 조금남은 땅자락은 큰손주 대학공부시키고 결혼시키느라 다팔아썼지..."
제주해녀들이 오랜 잠수로인해 병을 얻어 살아간다.
매일아침 두통약을 스무 알씩 삼켜가며 또다시 바다로 향하는 제주해녀들의 나이는
일흔... 여든... 아흔...
허파는 예전같지않고 바다는 예전보다 많이 척박해졌다.
여전히 맨발에 맨몸이지만
우리는 오늘도 바다속으로 우리만의 여행을 떠난다.